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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3대대첩과 이야기

이순신 3대대첩과 이야기

 

이순신 장군은 놀라운 업적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존경 받는 위인 중 한분이죠. 정치적 논란을 일으킬 부분이 없어서 세종대왕과 더불어 독보적일거 같은데요. 이순신 3대대첩을 정리하고 각 전투별 이야기를 조금씩 다뤄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게 임진왜란 3대대첩과 이순신 3대대첩인데요. 임진왜란 3대 대첩은 한산도대첩-행주대첩-진주대첩입니다. 이순신 3대대첩은 한산도대첩, 명량해전, 노량해전 입니다. 연도별로는 한산도대첩(1592), 명량해전(1597), 노량해전(1598)이구요. 이제 각 대첩에 대해서 간단하게 얘기해 볼께요.

 

 

 

한산도대첩

학익진을 사용하여 왜군을 물리치고 대승을 한 전투입니다. 명칭에서 다른 해전과 다르게 대첩이 붙는 이유는 그만큼 의미가 남다른 전투여서 일텐데요. 판옥선 5,6 척으로 적의 선봉을 급습하고, 적이 따라오자 후퇴하면서 적을 유인하여 한산도 앞바다에서 일시에 학인진을 펴고 왜군을 격파하였습니다. 이 전투로 인해 남해안 해상권을 장악할 수 있었고, 이순신 장군의 고도의 전략이 잘 발휘된 전투입니다.

 

 

명량해전

명량대첩이라고도 불리고, 영화로 만들어져서 가장 익숙한 전투인데요. 칠천량해전에서 적에게 대패하고 겨우 12척만 도망쳐 나왔습니다. 이 때문에 중앙정부에서도 이순신게게 육군에 종사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거구요. 그 유명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았습니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건데요. 이때 실제 전투에서는 13척의 배가 싸웠다고 합니다. 전투는 영화처럼 울돌목의 해류를 이용했는데요. 필사즉생 필생즉사라는 명언도 남기셨죠. 명언제조기가 따로 없네요.

 

 

 

 

 

노량해전

도요토미히데요시의 병사 소식을 듣고 왜군은 철수를 하게 되는데요. 이때 이순신은 명나라 진린과 함께 퇴로를 막아 도망가는 왜군을 격파한 전투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노량해전은 일본과의 전쟁을 끝내는데 중요한 역활을 했지만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가 되벼렸습니다. 남해방면으로 도망치던 왜군을 쫒다가 유탄에 맞아 전사한건데요. 이때 이순신 장군은 죽는 순간까지 자기의 죽음을 알리지 말고 추격을 게속하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당시 조선의 백성들 뿐만 아니라 명나라 장수 진린도 장군의 죽음을 슬퍼해 통곡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순신 3대대첩과 임진왜란 3대첩은 여기저기 상식 퀴즈로도 잘나오고 공무원 국사 시험문제로 출제 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상식으로 알아놓으면 좋을것 같아서 정리해보았어요.